명의 대여해 줬다가 96억 세금 폭탄 맞았습니다
고지서를 받은 날 밤
등기 우편이 왔다. 뜯어보니 세무서 명의였다. 금액을 확인하는 순간, 숫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96억. 평생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숫자였다.
의뢰인이 한 일은 이름을 빌려준 것뿐이었다. 2022년 초, 대출이 절박했던 그는 인터넷 대출 광고를 보고 연락했다가 "법인 명의를 빌려주면 거래 실적을 만들어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았다.
시키는 대로 서류를 넘겼고, 2022년 3월 유한회사 A사의 대표이사로 법인 설립 등기를 마쳤고, 통장 15개를 만들어 퀵서비스로 보냈다. 손에 쥐어준 건 160만 원이 전부였다.
유한회사 A사는 2022년 12월 직권 폐업됐다. 그러나 이후 세무조사에서 233억 원의 매출을 숨긴 사실이 확인됐다. 역삼세무서장은 주주명부에 올라있는 의뢰인에게 2025년 3월 납세를 통지했다.

96억 6,597만 원.
그날 밤, 의뢰인은 잠을 자지 못했다.
100% 주주라는데, 받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세무서의 논리는 단순했다. 주주명부에 100% 지분을 가진 사람으로 올라있으니, 법인이 못 낸 세금을 대신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2차 납세의무.
법인의 세금을 주주가 대신 떠안는 제도다.
게다가 세무서가 보기엔 증거도 있었다. 의뢰인이 직접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에 서명했고, 법무사 수수료를 냈으며, 은행에 가서 통장을 개설했다. 겉으로만 보면 전형적인 적극적 경영 참여였다.

세무서가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서류상으론 맞는 말이었다.
다만 절반만 본 것이었다. 서류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있었다.
의뢰인이 유한회사 A사에서 배당을 받은 적이 있는가.
급여를 받은 적이 있는가. 주주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가.
자본금 1,000만 원을 실제로 납입한 적이 있는가.
단 하나도 없었다.
명의 대여의 흔적이 오히려 무기가 되다
재판이 시작됐을 때, 의뢰인 쪽에는 불리해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직접 서명한 계약서들, 본인 명의로 발행된 현금영수증, 15개의 통장 개설 기록. 세무서는 이것들을 들고 나왔다.
법무법인 이현은 방향을 달리 잡았다. 이 행위들이 경영 의사의 증거가 아니라 사기 피해의 증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결정적인 카드가 하나 있었다. 의뢰인은 이미 이 사건과 관련해 2024년 5월 형사 처벌을 받은 상태였다. 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일반적으로 형사 처벌 기록은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에서는 반대였다.
범죄자의 지시에 따라 명의를 빌려주고 통장을 넘겨줬다가 처벌까지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국가기관이 그를 실질 주주가 아닌 명의 대여자로 공인한 증거였다.
법원은 이렇게 봤다. 의뢰인이 직접 움직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 경영 의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대출을 빌미로 한 사기꾼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가 핵심이다. 자본금을 낸 적 없고, 배당을 받은 적 없고, 경영에 관여한 흔적이 전혀 없다. 형식적 주주다.

2026년 2월, 96억 6,597만 원 전액 취소.
1심이 그랬고, 항소심도 같은 결론이었다.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다
지금 비슷한 고지서를 받아든 분이라면, 억울함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날짜.
제2차 납세의무자 지정처분을 받은 날부터 90일 안에 불복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처분은 그대로 확정됩니다. 억울하다고 말할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불복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단계 | 제출처 | 기한 |
|---|---|---|
이의신청 | 처분 세무서 | 통지받은 날부터 90일 (선택) |
조세심판청구 | 조세심판원 | 통지받은 날부터 90일 (필수) |
행정소송 | 법원 | 심판 결정 통지받은 날부터 90일 |
국세는 행정소송으로 바로 갈 수 없다. 조세심판원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조세심판원에서 기각됐다고 끝이 아니다. 이 사건 의뢰인도 이의신청과 심판청구가 모두 기각된 후 행정소송에서 전액 취소 판결을 받았다. 심판원과 법원은 다른 기관이고, 다른 결론을 낸다.
소송 중에도 세금은 살아있다. 불복을 제기했다고 처분이 멈추지 않는다. 체납이 되면 압류가 들어온다. 상황에 따라 집행정지를 별도로 신청하는 방법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두 번 기각된 사건, 뒤집을 수 있다
의뢰인이 법무법인 이현을 찾아왔을 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의신청 기각, 조세심판청구 기각. 남은 건 행정소송뿐이었고, 형사 처벌 기록까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지점에서 포기한다. 나라가 두 번이나 안 된다고 했는데, 더 해봐야 소용없다는 마음.
그러나 형사 판결문을 들여다보니 다른 것이 보였다. 판결문에는 분명히 적혀있었다. 의뢰인이 유한회사 A사를 운영하려는 의사 없이 명의만 빌려줬다고. 국가가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
법무법인 이현은 세무서가 제시한 증거들, 임대차 계약서, 현금영수증, 통장 개설 기록을 경영 참여의 증거가 아니라 사기 피해의 경로로 재구성했다. 법원은 그 논리를 받아들였다.
불리한 것이 유리한 것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찾는 것이 이 일의 전부다.
지금 해야 할 한 가지
고지서를 받았다면 오늘 당장 통지받은 날짜를 확인해야 한다. 90일이 얼마나 남았는지가 지금 가장 중요한 숫자다.
그다음 아래를 확인한다.
법인 자본금을 실제로 납입한 사실이 있는가
배당이나 급여를 받은 이력이 있는가
주주총회에 참석한 기록이 있는가
관련 형사 처벌 기록이 있는가
하나라도 해당된다고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해당되지 않는 것이 많을수록 싸울 수 있는 근거가 된다.
160만 원을 받으려다 96억을 떠안을 뻔했던 사람이 전액 취소 판결을 받아냈다. 억울함이 있다면, 90일 안에 움직여야 한다.
